(특집 2부) 북한의 비대칭 전략을 막아낼 한국의 대응 전략

김봉화 기자 / 기사승인 : 2019-03-14 14:3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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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ㆍ미사일 능력 및 위협

 

▲사진.  북한 장거리 핵위협 YouTube 캡처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및 위협


북한은 1950년대부터 핵개발을 모색하여 1960년대에는 구소련으로부터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하고, 1965년 영변에 설치된 핵물리학 연구소를 활용하여 핵물질에 대한 훈련 및 기초 연구를 수행하면서 핵물리학 분야 연구 역량을 축적해 나갔다. 1970년대에는 일련의 핵연료 주기를 집중 연구하는 등 자체 기술로 연구용 원자로의 출력 확장에 성공하였고, 1980년대에는 핵개발 체계 완성에 주력하였으며, 1990년대 초에는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고폭실험도 실시하는 등 핵무기 개발에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

이후 5MWe 원자로를 가동하여 얻은 폐연료봉을 2009까지 4회에 걸쳐 재처리하여 약 40kg의 플루토늄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되며,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 그리고 2013년 2월 등 3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한 바 있다. 2009년 4월 외무성대변인 성명을 통해 우라늄 농축 개발을 시사한 이후 2010년 11월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 2,000여개를 가동 중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볼 때,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추진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이렇게 핵무기를 계속 개발하고 보유하려는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 핵무기의 파괴력이 엄청 크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시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공격을 당하고 일순에 항복을 하였던 전례도 있다. 이렇듯 단 한발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내어 비록 현재 경제력과 첨단 전력면, 그리고 韓ㆍ美동맹에 따른 미군 전력 등 현재 전력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에 있는 북한이지만, 남북한의 군사력 균형을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핵무기 폭발시 위력과 피해 규모를 보면 핵무기 1kt의 위력은 TNT 1,000t의 위력과 같고, 핵무기 폭발시 피해효과는 폭풍 50%, 열복사선 35%, 핵방사선 14%, 자기파 1%의 피해를 나타낸다.

나가사키 인구는 당시 24만여 명이었는데 사망자는 73,884며, 부상자는 74,909명으로 집계되었다. 인구의 60^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지만, 원자폭탄 투하 전 많은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을 감안하면 남아있는 인원의 대부분이 원폭 피해자임을 알 수 있다. 실로 파괴력이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피해가 남아 있으며, 수 많은 사람들이 반세기 이상 지났음에도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둘째, 모든 협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북한은 그 동안 식량문제 해결, 경제문제 극복, 특히 체제유지를 위해 서방세계 및 한국과 수많은 협상을 했다. 그러한 협상 테이블에서 북한이 꺼내든 카드가 바로 핵인 것이다. 핵 협상을 빌미로 각종 회담을 통해 수많은 지원을 얻어 냈으며, 그 지원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핵 프로그램 재실행, 핵실험 대상 공개, 핵위력 실험 등 지속적인 도발을 해왔다.

이처럼 핵 협상의 이유로 모든 회담 및 협상에서 주도권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북한은 리비아 카다피 정부가 미국과 협상하여 핵을 포기하고 얼마간의 체제유지를 하였으나, 정작 평화의 봄이 불어 민중반란이 일어나서 체제가 붕괴위기에 놓이자 핵 포기를 대가로 체제유지를 해주겠다던 미국이 등을 돌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가장 확실한 협상카드가 핵이라는 것을 알기에 앞으로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으며, 계속 개발할 것이다.

그동안 다양한 방법을 통해 북한에 대한 핵억제 전략을 구사했지만, 북한의 핵을 제거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핵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간접적인 방법에 의한 핵억제 전략을 구사하였지만, 북한의 핵을 완전하게 제거하지 못하는 한 안보불안은 지속될 것이다.

대량살상무기 중 가장 큰 위협은 미사일 위협이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탄도미사일 개발에 착수하였다. 1970년대 초 중국의 미사일 개발 계획에 참여하여 미사일 기술을 획득한 것으로 추정되며, 1976~81년 소련제 SCUD-B 미사일 및 발사대를 이집트로부터 도입, 역설계하여 개발하였다. 184년 4월에는 SCUD-B 시험 발사에 성공하였고, 1986년 5월에는 SCUD-C 미사일의 시험발사에 성공하였다.

이에 따라 사거리 300km의 SCUD-B와 500km의 SCUD-C를 생산하여 작전배치 하였다. 이어서 1990년에는 사정거리 1,300km인 노동 1호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하여 작전배치 하였으며, 1998년에는 대포동 1호를 발사하였다. 2006년 7월 5일에는 대포동 2호, 노동미사일, SCUD 미사일 등 총 7발의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2007년과 2008년에는 KN-02 미사일로 추정되면 미사일을 수 차례 발사하였고, 2009년 4월 5일에는 개량형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하고 이어 7월에는 노동미사일, SCUD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또한 2012년 4월과 12월에는 ‘강성대국 원년의 해’를 맞아 김정은의 시대 개막을 알리는 축포와 체제결속의 형식으로 은하 3호를 발사하였다.

현재 북한은 사거리 300km와 500km의 SCUD-B/C 미사일 700여기, 사거리 1,300km의 노동미사일 200여기를 자체 생산 및 실전배치 하였고, 2009년 무수단 미사일 50기를 실전배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지난 2006년 대포동 2호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 등 사거리 6,000km 이상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해왔다.

2010년 10우러 10일 노동당 창건 65주년 열병식에서 특히 관심을 모은 것은 조선중앙통신이 ‘주체식 미사일 및 요격미사일 종합체’라고 명명한 미사일 부대였다. 북한이 공격용 탄도미사일 이외에 방어용 요격미사일도 보유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이날 등장한 공격용 탄도미사일은 사거리 300~500km인 SCUD-B/C 미사일과 사거리 1,300km인 노동미사일, 일명 무수단으로 불리는 중거리탄도미사일 등으로 추정된다.

또한, 북한이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신형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공개하였고, 이때 동원된 장병들이 전략 로켓사령부 장병들이었다. 전략로켓사령부는 북한의 미사일 전력을 통제하는 부대로 예하에 스커드와 노동, 무수단 미사일을 운용하는 3개 여단을 두고 있다.

미사일이 더욱 위협을 주는 이유는 미사일 자체가 보유한 피괴력 보다는 다양한 대량살상무기를 탑재할 수 있다는 것과 미사일 요격이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은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였고 미사일 또한 사거리 면에서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판단된다. 아직 미사일의 정확도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간이 자날수록 정확도 부분은 보완될 것으로 판단된다.

 

(특집 3부) 계속

 

김봉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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